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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생각보다 만만치 않군 : 이원석, 『서평 쓰는 법 : 독서의 완성』

리뷰/책

by 밤톨쿤 2019. 1. 13.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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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 리뷰를 써야겠다.'라고 생각한 건,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를 읽고 난 후 부터였다.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 작가가 청년 시절 읽었던 책들에 관해서, 자신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해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뒤로 '나도 내가 책을 어떻게 소화했는지, 내 나름대로 관점을 정리해서 글로 남겨두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다 읽었다. 끝났다." 라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다 읽었다는 사실로는 뿌듯하겠으나, 채워지는 것은 지적인 허영과 실체 없는 자기 만족에 그칠 뿐. 시간이 지나면 책 내용도 기억나지 않게 되고, 더 시간이 지나가면 '내가 이 책을 읽었던가, 읽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며 읽은 기억마저 희미해진다. 웬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소수의 책이 아니고서는 대부분 그렇다.


나름 시간을 내어서 열심히 읽은 책들인데, 책의 내용이 무엇이었고, 저자의 주장은 무엇이었고,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시간이 지나면 다 날아가버린다. 그것이 아까워서, 웬만하면 읽은 책에 관해서는 간단한 글로라도 정리해두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다. (물론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가서 앉는 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게으름 탓이다.)




책 리뷰를 쓰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여 이 책 『서평 쓰는 법 : 독서의 완성』을 구입해 읽었다. 매우 얇은 책이지만, 배울 것들이 많았다.


서평 쓰는 법이라고 해서, 서평에 관한 "How to"만 다루고 있지는 않다. 서평이 무엇인지, 정의와 목적에 관해서부터 글이 시작된다. 서평과 독후감에 관한 저자의 정의는 아직도 명확하게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내가 그동안 쓴 리뷰들은 서평이라기보다는 독후감에 가깝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이 명확한 구분은 다른 전문적인 서평들을 몇 개 직접 읽어봐야 체득할 수 있으리라.


뿐만 아니라 저자는 서평가의 태도 혹은 자질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첫째로 서평가는 책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서평은 대체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서평은 개인적 판단의 공개적 표현입니다. 그렇기에 서평가 개인의 기호가 중요합니다. 이러한 선택과 옹호 혹은 배제는 서평가의 기준과 가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합니다. 동시에 서평은 사회적 봉사입니다.

그런 책에 돈과 시간, 나아가 정신적 에너지를 투자한 것은 자기 자신 하나로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56쪽) 

저자의 입장에 공감하는 바이지만, 책에 대해 호의적인 주장을 할 때보다는 아무래도 비판할 때는 더 조심스러워야 할 것이다. A라는 사람이 '가'라는 책을 좋아한다고 하자. 대개의 경우 A는 자기가 좋아하는 '가'라는 책과 자기를 동일시 하는 경향이 있다. 동일시 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를 좋아하는 이유와 A의 가치관은 어느 정도 맞물리는 부분이 있다. 따라서 어떤 책에 관해 지나칠 정도로 냉소적인 비난을 할 경우, 그것은 책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그 책을 좋아하는 사람, 곧 인격을 무시하는 행위로 확장 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책에 대한 비판적인 논점으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는 조심스러워야 하고, 명확한 지식과 논리적 근거에 바탕을 두어야 하겠다.

둘째로 서평가는 충분한 선이해가 있어야 한다. 유익한 서평, 독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서평을 쓰고자 한다면 서평가는 공부할 필요가 있다. 평가하려는 책이 어느 맥락에 놓인 책인지, 어떤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는 책인지를 설명하려면 연관 분야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지식이 없는 서평은 유익할 수 없다. 좋고 나쁘다 정도의 단순한 표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심지어 좋고 나쁘다, 유익하다 아니다의 기준을 잡는 것에서도 서평가의 선이해가 필요하다. 

실은 공부한 만큼, 충분한 선이해를 형성한 만큼 해당 책과 비판적 거리를 둘 수 있고 책의 맥락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요는 공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서평을 쓰려면 공부해야 합니다. (81)


저자의 주장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내 지식이 조금 부족하다고 해서, 서평 쓰는 일을 미룰 필요가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지식의 충분성은 어떻게, 무슨 기준으로 가늠할 수 있을까? 어떤 분야에 관한 실무경험? 혹은 박사 학위 유무? 경력? 그 역시 주관적일 것이다. 공부해야 한다는 주장에 소위 쫄아서 서평을 안 쓸 필요는 없다. 양질전환의 법칙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양이 질을 만든다고, 많이 쓰고 또 쓰다 보면 더 퀄리티가 높아지겠지, 라는 희망을 가져보자.


서평의 본질에 관한 내용이 앞서 나온 후, 뒤이어 서평 쓰는 법에 관한 방법론적이 내용이 나온다. 서평이 어떻게 구성되며, 어떤 것이 평가의 요소가 되는지부터 실천적인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디테일한 서평 쓰기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책의 공시적, 통시적 위치, 제목과 목차 이해의 중요성, 문체를 보는 눈, 책이 다루는 지식의 정확성, 논리의 타당성 등등 책을 평가하는 요소가 상당히 많았다. 이런 요소들을 모두 주목해서 책을 읽는다면, 책을 정말 잘 소화할 수 있으리란 생각도 든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책을 직접 읽어 보시길 권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서평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전문적인 영역이구나.'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냥 책에 관한 편한 글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책을 좋아하고, 독서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바로 그런 책을 '소개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임에 틀림 없는 것이어늘, 그 두 가지(책과 책을 소개하는 것)의 연관성에 관해서는 조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랴. 나는 전문 서평가도 직업적 서평가도 아니기에 양질의 서평을 쓰기에는 시간도 여유도 없다. 다만 내 스타일을 유지하되, 이 책을 통해 배운 것 중,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곁들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리라. 


모쪼록 책을 이해하고 잘 정리하고 싶은 사람들, 혹은 독서를 더 꼼꼼하게 해보고 싶은 분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라는 말로 글을 맺는다.


##밑줄##


*읽은 책에 대해 말로 떠들 때는 책의 주장이 진부하게 느껴지고, 저자가 자기 아래에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하지만 막상 텅 빈 종이나 화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머리도 같이 텅 빕니다. (45쪽)


*서평 쓰기의 귀결은 독서를 통해 획득한 자아와 타자에 대한 깨달음을 더 넓은 지평으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앎과 삶의 일치, 즉 인격의 통합을 추구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49쪽)


*좋은 서평은 대체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서평은 개인적 판단의 공개적 표현입니다. 그렇기에 서평가 개인의 기호가 중요합니다. 이러한 선택과 옹호 혹은 배제는 서평가의 기준과 가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합니다. 동시에 서평은 사회적 봉사입니다.

그런 책에 돈과 시간, 나아가 정신적 에너지를 투자한 것은 자기 자신 하나로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56쪽)


*따라서 어떠한 책에 대해 분노를 느끼거나 비판을 하더라도 동시에 그 책의 매력 요인에 최대한 공감해야 합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이해를 위한 비판인 것입니다.

서평의 근간이 되는 비판이란, 맹목적인 반대가 아니라 명확하게 가르는 겁니다. 비판critique의 어원인 헬라어 κρίνειν(크리네인)의 원래 의미가 “분류하고 분리하고 구별하다”, 즉 가른다는 뜻입니다. 삶과 죽음에서 확장된 구도인 옳음과 그름을 가리는 것은 자연히 옳음에 대한 긍정과 더불어 그름에 대한 부정을 포함합니다.  (75, 77쪽)


*서평의 핵심 요소는 요약과 평가입니다. (85쪽)


*평가는 선택 그리고 옹호 혹은 배제입니다. 이렇게 견주고 매기려면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99쪽)


*공부만 하고 자기 입장이 없으면 그것은 그냥 사전 덩어리와 같은 것입니다. 또 공부는 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기 입장만 가지게 되면 남과 소통할 수 없는 고집불통이나 도그마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공부해서 자기 입장을 만들고, 또 자기 입장을 깨기 위해 또 고부하고, 이런 것이 공부이고 그게 책 읽는 사람의 도리입니다. (102쪽)


*그 대신 자신이 아는 것이 무엇인지를 숙고해야 합니다. 자신의 전문 분야나 최소한 어느 정도의 선이해가 있는 분야에 연루되어 있는 데부터 서평의 실마리를 찬찬히 풀어 나가면 되겠지요. (112쪽)


*”문체가 곧 사람이다.” 18세기의 박물학자 뷔퐁이 아카데미 프랑세즈 입회 연설에서 한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독일 철학, 특히 헤겔 철학의 전문가인 월터 카우프만은 문체의 난해함을 인격의 얄팍함으로 해석합니다. 문체가 곧 사람이라는 뷔퐁의 주장을 인격이 문체로 드러난다고 해석하는 겁니다. 그에 따르면 모호한 문체는 부실한 인격을 반영합니다. 그런 작가는 논의에 어려움이 발생하면 정직한 태도로 돌파하기보다는 난해한 문체로 회피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책이 어렵고 현란할 때, 독자는 자신의 능력을 반성하는 만큼이나 저자의 능력을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저자는 해당 주제를 정확하게 이해했는가? 얼마나 넓게 혹은 깊게 공부했는가? 둘째, 저자는 책에서 그 주제를 얼마나 명료하게 설명하는가? (130쪽)


*먼저 볼 부분은 책에서 다루는 지식입니다. 이는 다시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책에서 해당 영역의 지식을 충분하게 다루었는가의 여부이고, 다른 하나는 책에서 다룬 지식이 과연 정확한가의 여부입니다. (135쪽)


*서평가로서 책 속의 정보를 대할 때에는 언제나 그 정보의 본질, 배경, 맥락, 함의 등이 얼마나 잘 소개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 책에 대해 서평을 쓰려 한다면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확실하지 않거나 의혹이 생긴다면 관련된 자료를 대조해 가며 읽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확장된 인식을 가지고 서평을 써야 잠재 독자가 그 책을 읽을 때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135, 136쪽)




## 책을 읽고 더 찾아 읽어 보고 싶어진 자료들 ##


다치바나 다카시 -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 (책)

장정일 -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책)

비에르 바야르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책)

강유원 – 책과 세계 (책)

이현우 – 로쟈의 인문학 서재 (책)

이현우 – 아주 사적인 독서 (책)

정혜윤 –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책)

강유원 – 연암이 졸지에 개그작가로 ‘열하일기’ 장난해석에 씁슬 (문화일보, 04년 3월 11일)

정정훈 – [서평] 화폐의 권력과 코뮨의 능력 (문화과학 45호) (문화과학사, 2006), 327쪽

백승욱 – ‘제국’과 미국 헤게모니, 전지구화 : 세계체계 분석을 통한 『제국』 읽기 (경제와 사회 60호)(한국산업사회학회, 2003)

이원석 – 기독교 고전 읽기, 이 책으로 시작하라 (뉴스앤조이, 15년 3월 24일)

이권우 – 죽도록 책만 읽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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