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될 준비. 요즘 내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다. 아기가 생긴 것 같다며 아내가 임테기의 두 줄을 보여준 순간, 기쁘고 감사한 일임에 틀림없으나, 솔직히 말하면 무거운 마음이 더 컸다.
'어떻게 키우지.'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이 먼저 부담감으로 다가오다니, 나는 이미 좋은 아빠의 자격이 없는 걸까. 인터넷을 찾아보니, 다행히도 나만 그런 것은 아닌가보다. 살기 힘든 세상이니,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나보다.
결혼 생활은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각오도, 결심도 되어 있었다. 우리 부부는 8년의 연애기간 동안 큰 다툼없이 알콩달콩 지냈다. 그런 모습을 보고 형 누나들은 "연애할 때는 좋을 때지, 결혼하면 또 다르지." 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결혼해도 재밌게 살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2년 넘게 그렇게 잘 지냈다. 물론 신혼이기도 했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싸움 없이 잘 지내니, 이제 어느덧 부모가 된 형 누나들은 "아이가 없을 때는 좋지. 아이가 생기면 그 때부터는 다르지." 라고 했다. 이번에도 자신있게 "아이가 생겨도 싸우지 않고 알콩달콩 잘 지낼건데!" 라고 단언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사실 이번에는 자신이 없다. 아내 때문도 나 때문도, 그 누구 때문도 아닌 나 때문이다.
과연 내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을까.
아내가 임테기를 보여주고 나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육아, 출산과 관련된 책을 구입한 것이다. 10만원 넘게 책을 샀다. 아빠의 역할에 관한 책과, 임신/출산기에 여자의 마음이 어떤지 알수 있을 만한 책을 찾았고, 태아의 성장에 관한 책도 샀다. 그리고 가장 처음 손에 잡은 책이 이 책이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서』
제목부터 확 끌렸다. 아빠가 되는 길. 생각은 해봤으나 여전히 막연한 길,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길이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전혀 알 수 없는 길. 그 길을 어떻게 잘 갈 수 있을까. 그 길을 걸어가는데 좀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분류하자면 크게 3파트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첫째는 부모가 먼저 자기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두번째는 임신기와 출산 후 엄마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이며, 셋째는 출산 후 아이를 이해하고 돌보는 법에 관한 이야기다.
첫번째, 두번째 내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아이를 이해하고 교육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 했던 내용이다. 부모가 먼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정립되어 있어야, 아이를 교육할 때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모든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가 '잘 컸으면 좋겠다.'고 바랄 것이다. 그러나 딱 거기서 그친다면 좀 추상적이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잘' 에 대한 개념이 다를 수 있다. 어떤 부모는 아이가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랄 수도 있고, 다른 부모는 아이가 좀 더 온화하길 바랄 수도 있다. 누가 틀렸다고 할 수 없다. 다 옳은 길이다. 아이를 교육할 때 어디에 더 중점을 둘 것인지 부모가 먼저 가치관이 정립될 필요가 있다.
두번째는 아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저자는 아빠의 역할로 '간접육아'를 강조했다. 아이를 직접 뱃속에 품고 있는 것은 엄마고, 육체적/정신적 영향을 직접 받는 것도 엄마다. 아빠는 뱃속 아이와 상대적으로 거리가 있다. 따라서 아빠는 엄마를 보듬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책을 읽기 전에도 어느 정도 직감은 하고 있었다. 아내의 임신기에 내 역할은 아내를 잘 돌보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지지해주고, 아내를 위해 좀 더 나를 버리고, 아내를 응원해주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상식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임신기 엄마의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출산의 고통은 또 어떠한지를 알게 되니, 아내를 향한 마음이 더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
뱃속에 한 생명을 품고 있는 일, 생각보다 더 대단한 일이다.
그래도 나름 서평이니, 책의 단점을 좀 찾자면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있다는 것 정도. 예를 들자면 '골든아워'를 '골든타임'이라고 한다거나. 뭐 이정도야 그냥 넘어갈 수 있다. 더 아쉬운 건 프로이트를 많이 인용한다는 것. 프로이트는 현대 심리학에서 비주류로 취급된다. 그 이름이 워낙 유명하여 비전공자들도 알고 있을 정도이지만, 사실상 프로이트의 이론들은 과학적이지 못하다.
키이스 스타노비치는 그의 명저 『심리학의 오해』에서 프로이트의 심리학을 거의 사이비과학에 가깝게 취급한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과학적 근거가 미비하고, 결과론적으로 해석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스타노비치의 책이 나온 지 꽤 오래 된 걸로 알고 있는데, 아직도 많은 대중들과 심지어 지식인들 조차 프로이트를 상당히 비중있게 생각한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또 하나의 단점이라고 한다면 각주가 없다는 것. 참고문헌 목록을 보면 상당히 많은 저서들을 참고하여 책을 지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책의 어떤 사실이 참고문헌에서 온 것인지 주석이 분명히 달려있지 않다. 저자가 나름대로 소화하여 재구성한 것이겠으나, 분명한 팩트를 전달하고 싶었다면 다른 사람의 글을 자기 생각인 것처럼 적어내는 것보다는 각주로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 읽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나중에 아빠가 되는 동생들이 생긴다면, 이 책에서 본 내용들을 얘기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아예 이 책을 선물로 줘도 좋겠다. 어떤 아빠가 되어야할 지 아직 구체적으로 문장화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권 읽고 감은 좀 잡아가는 것 같다. 무엇보다 제 2장 임신기 엄마 돌보기는 별도로 북마크를 해두었다. 못 해도 그 부분은 한 번 더 읽어 두고 싶다. 임신기 아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밑줄
... 아빠가 엄마를 한 개인이자 여성으로 이해하고 지지하는 섬세한 존재로 재조명 되었기 때문이다. - 5쪽
임신할 때부터 엄마와 아빠도 동시에 임신되는 것이며, 아이가 탄생하는 순간 엄마와 아빠도 동시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육아가 시작되면서 엄마와 아빠도 육아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녀와 부모는 동시에 태어나고 성장한다. - 11쪽
'제가 엄마, 아빠를 닮아도 괜찮을까요?' - 17쪽
결국 임신부터 출산까지 아빠에게 부여되는 가장 큰 역할은 '엄마 돌보기'였다. 엄마의 컨디션이 좋으면 그 영향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달되기에, 그것이 간접적으로나마 할 수 있는 최선의 아빠 육아이기도 했다. - 18쪽
물론 아이의 몸과 마음이 자랄수록 아빠의 직접적인 역할도 늘어난다. 그러나 생후 초기 작은 불편에도 금세 괴롭고 두려워지는 아기에게 재깍재깍 배를 채워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엄마는 유일한 생명줄이자 세상 그 자체와 같다. 아빠에게는 그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의무가 있다. - 19쪽
그렇다고 "엄마, 아빠는 못난 사람이니 닮아선 안돼"라고 말할 수도 없다. 백지로 태어난 아이에게는 자연스레 부모의 색이 칠해지는 법이다. 그런데 부모가 우리를 닮지 말라고 하면 과연 아이는 누구를 롤모델로 삼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까? 또, 닮아선 안 된다고 한들 닮지 않을 수 있을까? ... 정도를 지키려 애쓰며 과오를 반성하고 정진한다면 완벽하진 않더라도 제법 괜찮은 참고서가 될 수 있다. - 48쪽
어릴 땐 그나마 장래희망을 정해두곤 했는데 어느새 어른이 되고서는 현실의 늪에 빠져 미래에 눈을 돌리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인생의 3분의 1밖에 살지 않은 지금, 몇 해 뒤를 떠올리며 나름의 지향점을 정해두고 사는 것이 당연할 법도 한데 말이다. 게다가 10년 뒤에도 여전히 곁에서 우리 모습을 보고 배울 아이가 있으리란 사실이 목표를 세울 필요성을 더욱 부추겼다. - 51쪽
부모 역할의 부담과 숙명, 괴로움과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미리 내다보고 대비해야 한다. 견고하게 다듬고 깊이 뿌리내려야 태풍이 몰아쳐도 날아가지 않는다. - 59쪽
아이의 목표를 세우기 전에 부모 자신의 10년, 20년 후 목표를 세워보자. - 60쪽
아이에게 필요한 건 아동 분석가가 아니라 따뜻하게 공감해주는 부모다. 고단한 육아를 견딜 마음의 준비를 하자. 실전 육아는 달콤하지만은 않다. - 61쪽
아내의 마음에 평생 남는 기억은 딸기를 못 먹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몰라주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남편에 대한 야속함이다. 임신 기간에 뭔가를 요구하는 마음의 기저에는 괴로움을 이해받고, 약해질 대로 약해진 자신을 돌봐주길 바라는 소망이 존재한다. ... 예비아빠의 역할은 부모가 되는 과정에 동참하며 엄마를 외롭게 방치하지 않는 것이다. 임신 출산의 중심에는 엄마와 아이가 있다. 전 과정에 걸쳐 가장 역할이 적고 그만큼 여유로운 사람은 분명 아빠다. 그래서 아빠가 더 많이 양보하고, 더 많이 배려해야 한다. - 70쪽
분노, 불안, 걱정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의 분비를 촉진한다. 코르티솔의 작용으로 임신 중인 엄마의 혈관이 수축하면 태아에게 전달될 혈류량이 줄고, 이에 따라 영양과 산소 공급에도 차질이 생긴다. 심하면 태내 발달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조산할 우려도 있다.
특히 태아에게 전달된 코르디솔은 아이를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예민하게 만든다. - 72쪽
스트레스를 줄이고 아이의 건강한 발달과 성장을 돕기 위해서는 엄마 마음을 돌보는 데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해서는 임신기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상쇄할 양질의 긍정적 경험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마지막 고비인 출산까지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야 한다. ... 여기서 임신기 아빠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 한 가지가 부상한다. 바로 태교를 기획하는 일이다. - 73쪽
노르웨이 아케르스후스 대학병원의 연구에 따르면 산모가 출산을 두려워하면 분만 시간이 평균 1시간 반 이상 늘고, 분만 중 도구를 사용하거나 제왕절개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엄마가 걱정과 두려움을 느끼면 혈중 카테콜라민 호르몬의 농도가 증가하는데 이 호르몬이 태아를 내보내기 위한 자궁의 수축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출산의 고통이 엄마를 괴롭히기 전에 두려움이 먼저 출산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 86쪽
태교의 목적은 엄마를 행복하게 해 태아에게 좋은 호르몬과 영양을 전달하는 데 있다. - 94쪽
2015년 인구보건협회에서는 1,309명의 엄마를 대상으로 출산 경험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무려 90.5%의 엄마가 산후우울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 임신기와 마찬가지로 출산 후의 감정변화도 호르몬과 관련이 깊다. 임신기 과다 분비되던 여성호르몬이 평소 수준으로 급격히 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우울한 감정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처럼 산후 초기 대부분 산모가 경험하는 정상적 우울을 'baby blues'라 한다. - 99쪽
툭하면 아기가 미워지고 아기를 미워하는 자신에게 더 큰 실망감을 느끼며 점점 더 깊은 절망에 빠진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눈도 못 뜬 채 입을 한 껏 벌려 엄마 젖을 찾고, 툭하면 '앙' 울음을 터뜨리는 아기의 모습은 그때가 아니면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점이다. 돌아오지 않을 이 소중한 순간에 엄마가 어떤 경험을 하느냐는 곁을 지키는 아빠의 손에 달렸다. 특히 출산 후 일주일은 아기에 대한 엄마의 시각이 결정되는 '골든타임'과도 같다. - 100쪽
아이가 이기고 부모가 지는 순간이 있어야 성숙한 패자의 모습을 보여줄 기회도 생긴다. 부모는 지더라도 패배감에 빠지지 않고 적당히 아쉬워하며 상대를 칭찬하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줄 수 있다. - 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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