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대의 대학살이라고 불리는 ‘홀로코스트’. 위키백과에 따르면 유대인, 슬라브족 등 약 1천 1백만 명의 민간인과 전쟁포로가 학살되었다. 이런 무자비한 일을 자행했던 것이 당시 나치 정권. 히틀러의 잔혹함에 용감히 맞서 싸운 10대 청소년들이 있었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그 놀라운 이야기가 『소년은 침묵하지 않는다』에 펼쳐져 있다. 진짜냐고? 그렇다. 이거 정말 레알이다. 책의 이야기는 다양한 역사적 사료와, 무엇보다 당시 10대 레지스탕스였던 ‘크누드 페데르센’의 인터뷰에 근거하고 있다.
1940년대. 크누드 페데르센과 동료들은 덴마크의 평범한 10대 청소년들이었다. 독일이 덴마크를 점령하기 전까지는, 분명 평범했다. 그러나 독일 점령 후, 이들은 달라졌다. 이웃 나라 노르웨이는 독일의 점령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저항했다. 싸웠다. 그런데 덴마크 정부는 독일의 점령을 수용했다. 국민을 지킨다는 명분하에.
크누드 페데르센은 분개했다. 노르웨이는 싸우는데, 우리 덴마크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옌스 형과 나, 가까운 친구들은 우리 정부가 너무나 부끄러웠다. 적어도 노르웨이 희생자들은 자랑스러워할 만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 우린 지도자들에게 분노를 느꼈다.” (28쪽)
페데르센과 뜻이 맞는 친구들은 뭉쳤다. 처음에 그들이 만든 조직의 이름은 RAF 였다. ‘영웅적인 영국 공군’(Roal Air force)의 머리글자를 땄다. 덴마크 첫 레지스탕스 클럽이 바로 이 10대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들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점령군 독일을 위해 만들어진 도로 표지판을 자전거로 들이 받아 화살표 방향을 바꿔놓았다. 덴마크 지리를 모르는 나치군들에게는 골치아픈 일이었다. 또 그들은 독일군의 사령부와 숙소를 잇는 전화선을 절단하고 다녔다.
RAF 클럽에서 작은 사보타주 활동을 시작했던 크누드 페데르센 형제는 아버지의 일로 인해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새로운 도시에서 또 다른 레지스탕스 모임을 결성했는데, 그 모임의 이름이 유명한 ‘처칠클럽’이다. 처칠클럽에서도 사소한 사보타주 활동을 시작했다. 여기서는 새로운 ‘무기’를 사용했는데, 파란색 페인트다. 이 용감한 10대들은 파란색 페인트를 들고 다니며, ‘나치에 협력했다고 소문난 상점이나 집, 관청’에 ‘전쟁으로 이득 보는 놈’이라고 쓰고 도망다녔다. 또 나치의 스바스티카 네 끝에 화살을 그려, 나치를 비꼬는 그들만의 상징으로 삼았다. “이게 바로 나치에 대한 혁명의 상징이야!” 이 대목을 읽을 때, 책의 표지가 어떤 의미인지 와닿았다. 기가막힌 표지였다.
소년들의 레지스탕스 모임 결성과 사보타주 활동을 책은 매우 흥미진진하고 속도감 있게 써내려가고 있다.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들 정도로.
하지만 이들의 활동이 뭐 그렇게 대단하냐고? 너무 사소한 것 아니냐고? 소년들은 이런 작은 일을 배포를 키우는 훈련으로 삼았다. 이후 그들은 친독일 건설사인 푹스사의 사무실을 불태웠다. 그리고 독일군의 무기(소총, 심지어는 기관총까지)를 훔쳐 달아났고, 독일군의 트럭을 불태우고 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나치의 화물열차를 불태웠는데, 그들이 불태운 열차 칸에는 비행기 날개가 가득 차 있었고, 날개를 동체에 붙이는 설계도까지 같이 있었다. 그것은 ‘나치에게 더없이 귀중한, 당첨 복권 같은’(117쪽)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나치의 수사망에 걸려들어 체포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의 체포 소식이 오히려 덴마크에는 자극이되었다. 덴마크는 독일에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페데르센과 동료들이 감옥에 있는 동안, 또다른 사보타주 활동을 하다가 잡혀들어온 사람들을 만났다. 페데르센이 형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덴마크에는 영국군의 지원을 받는 더 조직적인 레지스탕스 클럽이 활약하고 있었다. 이 용맹한 10대들의 사소한 사보타주 활동들이 커지고 커져, 잠자던 덴마크를 깨운 것이다. 그러니 결코 그들의 활동은 작고 사소하지 않았다.
어른들이, 지식인들이 이것저것 재고 따질 때, 정부가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나치의 점령을 수용했을 때, '히틀러의 애완 카나리아'라고 불렸던 덴마크의 명예를, 바로 이 10대들의 사소한 ‘행동’ 지켜준 것이다.
일제 강점기를 겪은, 비슷한 역사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도 공감하고 흥분하며 읽을 수 있을 만한 내용이다. 유관순 열사도 생각이 났고, 영화 박열도 생각이 났다. 나라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나라면 이렇게 용감하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이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아무리 사소해 보일지라도. 뜻이 분명하다면, 일단 하는 것. 작고 사소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 완벽하지 않더라도, 대단하지 않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일단 행동으로 옮기는 것. 깊은 사유와 철학과 고민 따위보다, 10대와 같은 뜨거움과 단순함과 행동력이 세상을 바꾸기도 했으니까. 좀 더 생동감 있게 살아보자.
*일부 인용
"크누드는 폴란드가 작년에 독일에 침공당했다는 사실도 그저 어렴풋이 알 뿐이었고, 히틀러의 집권으로 유대인들이 심각한 위험에 직면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4월 9일에 독일 비행기들이 날아들기 전까지 그에게 독일은 그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인구는 덴마크의 스무 배인, 덴마크의 역사와 문화에 과도한 영향을 미치는 깡패 같은 옆 나라에 불과했다." (22쪽)
"1940년 가을 동안 우리는 거듭 공격을 가했고, 오덴세 지역에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우리에겐 특별한 공격 방식이 있었다. 전화선 절단에 관한 이야기가 나돌았고, 엉망이 된 표지판을 모두가 볼 수 있었다. 피닉스 극장 로비에서 다른 아이들이 사보타주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들은 기억이 난다. 대체 누구래? 다들 궁금해했다." (35쪽)
"보통 덴마크인들은 점령당했다는 사실과 점령군을 증오했지만 저항운동을 벌일 거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아니, 그럴 순 없어...... 기다리는 게 좋아...... 아직 우린 강하지 않잖아...... 헛되이 피를 흘리게될 거라고.'"(46쪽)
"우리는 소극적 부서라고 이름 붙인 네 번째 부서도 창설하기로 했다. 현장 습격에 참여할 만큼 의지에 불타거나 용맹하지는 못해도, 모금을 한다든가 지원자를 모집하는 등 다른 길을 통해 우리를 도울 반 친구들이었다." (51쪽)
"나는 감방 청소를 안 해서, 명령을 따르지 않아서, 입 닥치고 있으라고 할 때 친구들에게 말을 걸어서 벌을 받았다. 나는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 그들은 수감자의 정체성을 박탈하고 그들의 마음을 가지고 놀았다. 키가 작고 뚱뚱하고 얼굴색이 붉은 간수 하나가 있었는데, 나를 정말로 미워했다. 내 감방에 대고 열쇠를 쩔그렁댔는데, 그 소리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 짓을 하는 그자는 자유의 몸이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감시 구멍으로 엿볼 수도 있다. 나는 늘 누군가의 눈이 나를 엿보는 기분을 느꼈다." (169쪽)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저는 지금 죽으러 갑니다. 너무나 두려워요. 하지만 저는 기독교인으로서, 그리고 전쟁 중인 덴마크의 국민으로서 죽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제게 힘을 주시리라 믿어요.
하나님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축복하시길 기도합니다. 저는 최선을 다했고, 잡히기보다는 죽는 게 낫다고 믿어요. 그들이 밖에 있고 저는 이제 그들과 맞서야 합니다.
하나님께 제 영혼을 맡깁니다.
-카를" (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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