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다. 환경을 탓하자면, 썩 칭찬을 받고 자란 경험이 없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고등학교 사회문화 시간에는 “자녀에게 칭찬을 잘 해주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고 발표하기도 했었다.
옳고 그름에 대한 확신을 밝히고 싶어도, 부당한 것에 대해 말하고자 해도, 자존감이 낮은 나는 선뜻 용감하게 나서 바로잡지 못했다. 바로잡기는커녕 말도 한마디 하지 못했고, 그저 대세를 거스르지 않고 살아왔다. 사실 그런 대단한 일에서만이 아니라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도, 교수님이 출석 확인 하실 때 대답하는 것도 나에게는 떨리는 일이었다.
대학교 1학년의 끝자락에, 제대로 된 기독교 가르침을 듣고 교회에 다니고 배우면서 사회적인 두려움은 많이 없어졌다. 그러나 새롭게 나를 주눅 들게 하는 일이 생겼는데, 그것은 나의 인격적인 결함, 부족함들 때문이었다.
교회 다니기 전에는 자존감이 부족해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내 생각만큼은 언제나 옳다고 생각했다. 부당하고 잘못한 것은 언제나 주변 사람, 또는 사회라고 여겨왔다. 비난의 화살과 책임을 주변에 돌렸다. 갓 20대에 들어선 어린 청년 특유의 지적인 교만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고, 나의 내면을 돌아보게 되었고, 그러면서 나는 사회보다도 나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절망하고 탄식하는 일이 많아졌다. 나의 생각하는 것이나 감정들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 일관되지 못하다는 것으로 인해 눈물지었다. 나의 행실이 꾸준하지 못하고, 의지력이 형편없다는 것 때문에 한숨 쉬고 절망하고 힘을 잃은 적이 수없이 많다.
기독교인으로서, 말씀에 의지해서 힘을 내고 기도하고 나아가는 것이 정석적인 일이겠지만, 또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테지만, 이 지면에서는 다른 차원에서의 깨달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입대 몇 개월 전이었다. 어느 책을 읽던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왔다.
.. 하루는 그 집 아이들이 해주놈 때려 주자고 공모하여 이유 없이 나를 매질하였다.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부엌칼을 가지고 그 집 아이들을 다 찔러 죽일 결심으로 달려갔다. 앞문으로 들어가면 아이들이 눈치 챌까 봐 칼로 울타리를 뜯고 들어가는데, 마침 안마당에 있던 처녀가 놀라 제 오라비에게 일렀다. 나는 다시 실컷 얻어맞고 칼까지 빼앗겼다. 집에 돌아와서는 칼을 잃어버린 탓에 부모님께 말씀드리지도 못하고 내내 시치미를 떼었다.
자신을 괴롭힌 아이들에게 피로 복수하려고 어린 나이에 칼을 들고 찾아갔던 이 아이는 분을 이기지 못해 자제력을 잃은, 분명 위험한 아이다. 이 행동은 정상적이지 못한, 쉽게 말해 또라이 같은 행동이었다. 이런 아이가 커서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여러분은 실제로 이 아이가 커서 어떤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강도? 살인자? 또는 건달? 다 틀렸다. 그는 일제 말기와 해방 정국 당시, 대한제국의 존경 받는 지도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살인미수에 그친 이 아이는 다름 아닌 백범 김구 선생이었고, 이 회고는 백범일지에 본인이 직접 기록한 내용이다. (인용한 글 『백범일지』, 돌베게)
사실 내가 이 일화를 바로 나 자신에게 적용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교회 중고등부 아이들이 먼저 생각났다. '이 아이들을 내가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하는 교육적 차원에서 먼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현재적 모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이 아이의 지금 모습이 이 아이의 전부가 아니다. 그러니 아이의 미래를 믿어주고 기대할 수 있는 중고등부 교사가 되어야겠다.' 라고 마음을 먹었다.
비슷한 시기에 읽었던 박지성 선수의 자서전에도 유사한 내용이 있었다.
난 항상 긍정적이었습니다. 재능도 없고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 착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난 '지금 보이는 게 내 전부가 아니다.' 라는 말을 새기면서 더 나은 미래를 꿈꿨습니다. ... 다만 현재의 나보다 미래의 내가 더 나을 것이라는 걸 믿고 있었습니다. (『더 큰 나를 위해 나를 버리다』, 중앙Books)
백범 선생님의 어렸을 적 일화, 그리고 박지성 선수의 일화를 들으며 교회 중고등부 교사로서 교육관을 다시 잡은 나는, 언제부턴가 그 생각을 나 자신에게도 적용하게 되었다. 나의 부족한 모습으로 인해, 나의 결함으로 인해 절망하고 힘이 빠지게 되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이렇게 생각하며 힘을 내고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낮은 자존감을 떨쳐낸다.
“지금 내 모습이 내 전부가 아니다.”
“지금은 비록 이렇다 해도, 후에 나는 더 나은 내가 될 것이다.”
“지금은 내 자신에게 졌어도, 곧 나는 나 자신을 이기는 자가 될 것이다.”
아직은 보이지 않는 미래의 나, 지금보다 더 나은 수준의 나, 이것을 "희망"이라고 한다면
나는 희망으로 절망을 떨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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