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가 보고 싶었다. 일제를 상징하는 전범기 한가운데를 한 사내가 찢으며 달려가는 짧은 찰나의 예고편을 보고, ‘저 장면은 극장에 가서 보면 소름 돋겠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군함도가 개봉하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래서 더 보고 싶었다. 내가 직접 보고 판단하고 싶었던 것.
군함도 예고편 한 장면. 사진 출처: 인사이트(http://www.insight.co.kr/news/110718)
군함도가 개봉하고 며칠이 지나 <택시운전사>가 개봉했다. 여론을 보니 군함도와 택시운전사가 제법 상대적으로 비교가 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군함도를 먼저 보고 싶었지만, 아직도 못 봤다. 그리고 어찌 된 영문인지 지금 이렇게 택시운전사에 대한 감상을 먼저 적고 있다. 아내가 군함도 보다는 택시운전사를 더 선호했던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군함도는 아직도 못 봤다)
역시나 박열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영화에 대한 별다른 사전정보도 없이 갔다. 리뷰도 확인해보지 않았다. 그저 광주민주화운동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독일인 기자에 관한 이야기가 영화화되었다는 배경 정도만 대충 들어서 알고 있었을 뿐.
영화의 첫 장면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택시 기사인 주인공 만섭(송강호)이 택시를 몰고 신촌에서 독립문으로 넘어가는 고가도로를 달리는 장면이었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이어서 한동안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배경음악 삼아 만섭의 운전하는 모습이 쭉 이어진다. 이 장면에서 CG 티가 너무 많이 났다.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티가 많이 나서, ‘이게 요즘 만들어진 영화인가.’ 싶기도 한 한편으로, ‘스토리에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 이걸 이 상태로 개봉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보기로 했다.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가 다 끝나고, 영화 시작 장면에서 내가 했던 생각을 떠올렸다. ‘스토리에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 이걸 이 상태로 개봉했을까?’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개봉할 만했다.’ 물론 세세하게 따지고 들면 스토리에 빈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택시 추격씬 같은 것을 보면, 개연성이 좀 떨어지긴 한다.
그러나 나는 줄거리 소개나 영화평을 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나에게 준 생각을 정리하고, 내 나름대로 이 영화에 대한 추억을 남겨보고자 했다.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장면은 만섭이 몰래 광주를 떠나려고 했던 순간부터 시작된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만섭은 아직 자고 있는 위르겐 힌츠펜터(토마스 크레취만)를 두고 이른 새벽 몰래 태술(유해진)의 집을 나온다. 자신의 택시를 타고 몰래 떠나려던 만섭. 막 출발하려던 찰나 태술이 나타나 차를 세운다. 계엄군이 서울 택시는 다 잡아다가 못 나가게 막고 있는 판에 어찌 그냥 가려고 하느냐며. 전남 번호판과 지역 사람들만 알고 있는 샛길 약도까지 건네준다. 그리고 독일인 기자 양반이 주는 거라며 택시비도 쥐여 준다. 사실 힌츠펜터는 만섭이 몰래 나가는 것을 알고도 붙잡지 않았던 것.
만섭은 한사코 택시비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이 돈을 어떻게 받습니까.”
그리고 말한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태술은 만섭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머시가 미안혀라, 나쁜 놈들은 따로 있구만.”
태술이 알려준 길로 광주를 빠져나온 만섭, 순천쯤 갔을까. 만섭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를 따라부르며 서울로 가던 중이었다. 감정을 억누르며 노래를 따라부르는 송강호의 연기력에 속으로 감탄하고 있을 무렵, 아니나 다를까. 잠시 신호를 기다리는 찰나, 만섭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은정아 아빠 어떡하냐...”를 되뇌던 만섭은 결국 차를 돌려 광주로 향한다.
영화의 한 장면. 태술과 만섭. 태술은 시종일관 친절하게 만섭을 챙겨주었다. (사진: 네이버 영화)
설령 만섭이 힌츠펜터를 광주에 둔 채로 그냥 광주를 떠나 서울로 간다고 해도, 누가 만섭을 비난할 수 있을까? 만섭은 떠나기 전날 재식(류준열)이 사복 경찰에게 끌려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총소리를 들었고, 본인도 사복 경찰에게 붙잡혀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다. 광주에 더 남아 있으면 언제 죽을지 모를 일이었다.
서울에는 딸 은정이가 홀로 있었다. ‘죽음도 두렵거니와, 또 내가 여기서 정말 죽어버리면 내 딸 은정이는?’ 아버지로서 당연히 걱정되는 일이었다.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딸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은 정말 당연한 일이다. 힌츠펜터도, 태술도 그런 만섭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만섭에게 미안해하지 말라 위로하며 보내주었던 것이리라.
만섭은 왜 갈등했을까?
그런데 만섭은 왜 서울로 가는 길에 계속 갈등했을까? 왜 그의 마음은 서울로도 가지 못하고, 광주로도 가지 못하는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던 것일까?
한때는 왜 데모를 하는지, 대한민국같이 살기 좋은 나라가 없다고 말하던 만섭이었다. 그러던 그가 광주에서 일어나던 일들을 눈으로 보았다. 숱한 시민들이 끌려가거나 죽어 나갔다. 이 지냈던 정 많고 따듯했던 재술, 재식, 주먹밥을 나눠주던 이름 모를 처녀들, 이 사람들이 정말 빨갱이란 말인가? 자기 자신마저도, 빨갱이로 낙인 찍혀 죽을 뻔했던 만섭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순천쯤에서 만난 사람들이 광주에 대해 하던 이야기도 만섭의 마음을 건드렸을 것이다. 그들은 가짜 뉴스에 속아 사실을 오해하고 있었다.
만섭이 광주를 쉽게 떠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또한 사람으로 해야 할 도리이자 본능, 양심 때문이었으리라.
만섭과 그의 하나 밖에 없는 딸 은정. (사진: 네이버 영화)
만섭은 서울로 가도 미안하고, 광주로 돌아가도 미안한 상황이었다. 서울로 돌아가면 광주에서 보고 겪은 사람들을 빨갱이로 두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광주에 그냥 있자니 딸에게 미안한 상황. 무엇이 만섭을 그런 상황에 처하게 했는가!
나는 국민의 생명을 빼앗고, 또한 그 양심도 지켜주지 못한 당시 정부에 대해서 화가 났다. 육체적 생명과 양심의 생명은 사람이 사람 되게 하는 중요한 2가지의 축인즉, 그 당시의 정부는 국민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 국민의 인격을 짐승의 것으로 격하시켰다. 숱한 사람을 빨갱이로 만들어 버리고 죽이고 고문했던 그 권력의 추악함에 대해서 화가 났다. 전두환 정부와 그 충실한 손과 발로 활약했던 끄나풀들의 권력욕에 대해 ‘더럽다.’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더럽다. 더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하겠다.
그들의 동물적 욕망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양심이 짓눌려야 했던 과거가 너무나도 안타깝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아니 꽤 많은 사람이 말한다. 그래도 그 당시에 우리나라가 살기 좋았다고. 경제가 발전했다고. 그들의 말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이것이다. “사람 좀 죽어 나갔어도, 돈을 벌었으니 괜찮다.” 그러나 피는 돈으로 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과는 공에 의해 가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가 막대한 범죄라면 더욱 그러한 것이다.
더럽고 무능한 권력자 때문에, 나약한 개인이 이렇게 해도 미안하고, 저렇게 해도 미안한 상황에서 고민해야 하는 사회는 얼마나 불행한가.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미안한 현대판 “만섭”들은 여전히 많다.
약 4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지금은 만섭의 상황과 같은 일이 없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영화 박열을 보던 날이다. 영화 시작 전에 나오는 많은 광고 중에, 유독 한 광고가 눈에 들어왔고,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박카스 광고였다. 귀엽고 유머러스한 광고였다.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았다. 일에 바빠 가정을 챙기지 못하는 소재는 드라마, 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어릴 때는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가 제법 큰 행사였다. 부모님들이 모두 와서 구경하고, 또 함께 참여했다. 점심때는 운동장 곳곳에 돗자리를 펴고, 어머니께서 싸주신 도시락을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먹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6년 동안, 내 어머니가 운동회에 오신 것은 아마 1~2번 정도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바쁘셨다. 공장 일을 다니셨다. 우리 집은 가정형편이 어려웠고, 어머니는 쉬실 수 없었다. 어머니는 가정을 위해, 어머니로서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신 것이다. 다른 아이들의 부모는 다 오는데, 옆집 아주머니께 나를 맡겨야 했던 내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지금은 내가 그렇다. 내 고향은 시골이다. 일을 시작한 후로는 시골에 자주 내려가지 못한다. 명절에도 하루 이틀 있다가 올라온다. 부모님은 서운하시고 아쉬워하시겠지만, 자주 내려가지 못하는 내 마음 역시 편하지 않다.)
부모로서, 또는 자녀로서, 또는 배우자로서 가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게 최선이 아닌 경우를 우리는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상황만 달라졌을 뿐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미안한 현대판 “만섭”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국가가 지켜주지 않는다면, 양심의 자유라는 말은 허울일 뿐이다.
양심의 자유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양심의 자유가 있지만, 국가 또한 국민의 양심의 자유를 지켜주어야 한다. 80년대처럼 국가가 개인을 억누르는 상황에서 양심의 자유는 허울일 뿐이다.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경제, 자본이라는 굴레로 개인을 얽매는 상황에서 양심의 자유는 지켜지기 어렵다.
개인이 자신의 양심을 따라 살 수 있도록, 도덕적 딜레마를 줄여주는 것. 이것이 국가의 할 일이다. 그래서 부모로서, 자녀로서, 배우자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명확해지고, 개인이 겪어야 하는 딜레마가 줄어들 때, 그래서 개인이 최선을 다 하면 최선의 결과가 도출될 때, 우리의 삶은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복지’라고 하는 진보적 가치와, ‘정직’ 혹은 ‘질서’라고 하는 보수적 가치 모두에 의해 실현되어야 한다.
(최순실과 끄나풀들의 부당한 지시에 직면했던 사람들은 가정에 대한 책임감과 도덕적 책임감 사이에서 얼마나 갈등했을까? 소수의 더러운 욕심이 보수라는 가짜 탈을 쓰고, 국가적 질서의 유지라는 바른 보수적 가치를 훼손한 데 대해 답답할 따름이다. 총과 피가 없었을 뿐 80년 광주의 상황과 다를 바 없지 않았나?)
그러나 나는 일개의 개인. 모두가 정부에 이와 같은 요구를 하게 되면 다르겠지만, 나 혼자만이 이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정부라고 하는 거대한 집단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일만 논하고, 나의 일을 생각지 않는다면, 나는 거대담론만 이야기하는 사변적인 망상가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시대가 모습만 달라졌을 뿐, 80년대의 만섭의 삶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보다 더 나은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면, 정녕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그 답 역시 택시운전사 안에서 찾았다. 그러나 그 대상은 만섭도, 힌츠펜터도 아니었다. 태술이나 재식도 아니었다. 영화의 마지막, 검문소에서 만섭 일행을 통과시켜주었던 이름 없는 중사(엄태구)에게서 찾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상상했던 내용 중의 하나는 이것이었다.
‘시민들을 폭행하는 저 군인들 중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사람이 정말 하나도 없었을까?’
‘광주가 고향이거나, 광주에 친인척이나 친구를 둔 군인도 분명 있지 않았을까?’
‘역사에 기록은 남지 않았지만, 명령에 항거한 사람은 없었을까?’
아마 있었을 것이다. 나는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들 역시 괴로웠을 것이다. 군인은 명령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군인의 도리다. 하지만 광주 시민에 대한 폭력은 뭔가 수상스럽다. 그래서 양심의 갈등 속에 있었던 군인. 분명 있었을 것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의 검문소 중사 (사진: 네이버 영화)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에 한 중사를 통해 나의 상상을 지지해주었다. 나중에 기사를 통해 보니, 이 장면 역시 힌츠펜터의 회고에 근거한 사실이라고 한다.
양심의 딜레마 속에서, 개인으로서의 우리는 어느 한 길을 선택해서 걸어갈 수밖에 없다. 서울로 가면서 동시에 광주로 갈 수는 없다. 따라서 개인으로서의 우리는, 각자가 선택한 길을 열심히 가야만 한다. 만섭이 그랬듯이.
하지만 하나의 선택을 했을 때,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을 아예 외면하지는 말아야겠다. 검문소의 중사는 광주에 있었지만, 서울을 외면하지 않았다. 자신의 신분으로서 마땅히 할 일을 하면서도 진실을 외면하지도 않았다.
내가 비록 가지 못한 길이라고 할지라도, 그 길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내 발이 향하지 못했다고 해서, 마음마저 배반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 그 길을 가는 다른 사람을 생각해주는 것. 그렇게, 내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검문소 중사의 일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큰일을 할 수 있는 그릇은 못되더라도,
작은 선을 행하는 작은 양심,
작은 정의를 외치는 작은 용기,
그것이나마 간직하고 사는 개인이 많아진다면, 우리의 삶과 사회는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서평) 소년은 침묵하지 않는다 : 히틀러에 맞선 소년들 (1) | 2018.11.01 |
---|---|
(서평) 기획자의 습관 :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을 기획하기 (1) | 2018.10.15 |
[책 리뷰] 감성 충전이 필요할 때 (시의 문장들, 김이경) (0) | 2018.08.26 |
지금 보이는 게 내 전부가 아니다 (0) | 2017.11.12 |
[늦은 영화 후기 - 박열] 진정, 난세가 위인을 만드는가? (0) | 2017.11.04 |
댓글 영역